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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3.0]③"물량 줄이면 된다구요? 가장 노릇부터 포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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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3.0]③"물량 줄이면 된다구요? 가장 노릇부터 포기해야 합니다"
  • 뉴스팍
  • 승인 2020.10.30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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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택배산업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택배 물량이 30% 가까이 급증하면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택배 기사들은 늘어난 짐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이립'(而立, 서른살)을 향해 가는 한국 택배 산업이 소비자와 종사가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진정한 '황금기'로 접어들기 위해 풀어야 할 숙제들을 짚어봤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가 공개한 한진택배 소속 택배기사 김모씨가 사망 며칠전 동료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 뉴스1

 


(서울=뉴스1) 정혜민 기자 =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저 16번지 안 받으면 안될까 해서요. 오늘 420(개) 들고 나와서 지금 집에 가고 있습니다. 저 너무 힘들어요."

지난 12일 숨진 채 발견된 한진택배 소속 택배기사 김모씨(36)가 사망 며칠 전 동료에게 보낸 문자다. 김씨는 새벽까지 일하다 오전 4시를 넘은 시각에 퇴근하면서 이 메시지를 보냈다.

올해 들어 택배업 종사자 총 13명이 사망했고 과로사 추정되고 있다. 그중 6명은 10월 한 달 동안에 숨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택배 물량이 늘어난 상황에서 추석 물량이 겹친 영향이다.

일부에서는 택배기사들이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배송물량을 줄이거나 사람을 더 고용하면 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택배기사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이같은 비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택배기사들의 과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다. 택배기사들이 과로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여다봤다.

◇택배물량, 택배기사에겐 '선택의 자유' 없다

지난 7월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가 대리점에 '물량축소'를 요청할 수 있는 '물량축소 요청제'를 표준계약서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배송물량이 급증하자 택배기사들의 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한진택배도 택배기사들에게 물량을 줄일 것을 지속적으로 권유해왔다. 롯데택배는 지난 26일 발표한 택배기사 보호 대책에서 "하루에 배송할 수 있는 적정량을 산출해 적용하는 '물량조절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배송물량을 줄여 노동강도와 시간을 감축하는 방식으로 과로사를 막자는 취지지만 택배기사들은 이 같은 대책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택배기사들은 그날의 '물량'을 선택하지 않는다. 택배기사들은 자신의 '배송구역'을 정해두고 구역 안에 떨어지는 물량을 자신이 오롯이 처리하는 방식으로 일한다. 한시적으로 배송물량을 줄일 수 있는게 아니라 아예 배송구역을 쪼개거나 택배기사를 추가로 뽑지 않는다면 물량을 줄일 수 없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배송구역의 물량은 1.5인분 수준이다. 2명이 구역을 나눌 경우 수입이 줄어들어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다고 택배기사들은 하소연한다. 특히 지금은 코로나19로 물량이 늘어난 특수한 상황인데 끝난 이후를 생각하면 구역을 나누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대책위)는 "배달물량 축소요청제를 현장에서 시행하려면 신규인력 1명 충원 시 인접한 5명 정도가 '인접한 물량을 포기'해야 한다"며 "현실성이 떨어지는 탁상공론"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어 "배달기사들의 수입이 감소하는 상황에 대해 '수수료 인상' 등이 수반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전무하다"며 "따라서 택배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유일한 해법은 '분류작업 인력투입'"이라고 주장했다.

매일 물량이 쏟아지기 때문에 '내일'로 넘기는 것도 어렵다. 미룰수록 배송해야 할 물건들이 계속 쌓이는 만큼 미루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특히 배송물건 중에는 신선식품을 비롯해 상할 수 있는 것들도 포함돼 있다.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 최저생계비 벌려면 하루 260개 배송해야…1건당 1.15분 안에 끝내야

택배기사들이 물량을 포기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는 '낮은 수수료'가 꼽힌다.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택배기사가 받는 배송 수수료는 건당 평균 782.1원 수준이었다. 택배기사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71.3시간에 달한다. 또 대리점 관리수수료, 택배차량 구입 할부비용, 차량관리 비용 등 한 달 평균 224만원을 지출한다.

결국 택배기사들이 2020년 4인 가족 최저생계비 약 285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한달에 손에 쥐는 금액이 509만원 이상이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들의 월평균 매출은 485만7000원, 순익은 234만6000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한 달에 25일 근무하는 택배기사가 509만원을 벌기 위해서는 매일 260건을 배송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루 10시간 일하는 택배기사가 하루에 260건을 배송하려면 택배 1건당 1.15분 만에 배송해내야 한다. 사실상 이 정도 속도로 배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택배기사들은 전체 업무 중 운송·배달작업 비중은 50.2%에 불과하다고 응답했다. 분류작업 비중은 42.8%에 달했다. 이 밖에 집화작업(11.1%)과 고객관리 등 기타(8.5%) 업무도 해야 한다. 이를 감안하면 건당 배송시간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대로 택배 1건당 배송시간을 3분으로 계산하면 하루 260개 물량을 처리하려면 무려 13시간을 일해야 한다. 택배기사들이 매일 밤늦게까지 배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물량을 많이 배송하고 싶어서 많이 배송하는 게 아니라 단가가 떨어져서 많이 배송하는 것"이라면서 "옛날엔 100~200건 배송해도 됐지만 이제는 300~400건씩 배송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추석명절을 앞둔 24일 경북 포항시 남구 한진택배 포항지점에서 택배기사들이 배송할 물품을 분류하고 있다. 2020.9.24/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적정물량의 125~200% 소화…추석물량도 겹쳐

코로나19 이후 배송물량 자체도 크게 늘었다. 설문에 따르면 1인당 하루 택배 '배송' 건수는 기존 247.3개에서 코로나19 이후 313.7개로 26.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택배업계 관계자 A씨는 "수도권은 하루 200~250개, 지방은 150~180개를 일일 기준물량으로 설정했지만 워낙 물량이 많아 이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전했다. 이 수치를 토대로 보면 택배기사들은 적정수준의 125~200%를 소화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배송물량뿐만 아니라 택배기사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분류물량도 증가했다. 1인당 하루 택배 '분류' 건수는 412.1개에서 559.6개로 35.8% 늘었다.

여기에 '추석 특수기'가 겹치면서 택배기사들의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번 추석에는 특히 택배기사들이 소화하기 버거울 정도의 물량이 쏟아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A씨는 "작년 추석에 비해 물량이 25~35% 늘었다. 추석 연휴기간 물량은 그 다음 주 월요일(10월5일)에 집하(접수)돼 원래 추석연휴 바로 다음 날 최대물량에 도달한다. 하지만 이번 추석은 연휴가 지나고도 물량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계속 유지됐다"고 말했다.

올해는 연휴가 끝나고도 물량 증가세가 지속돼 택배기사들의 피로가 누적된 것이다. 이달 중에만 택배업계 종사자 6명이 과로사 추정 사망했다. 사망 사례는 이달 말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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